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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cial Entrepreneur in Wonderland * Twitter : @louiskim

압구정동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
비슷한 시기에 소비문화의 아이콘으로 등장했고,
이제 수많은 아류들에게 무대를 양보한 채 한 걸음 물러선 존재

서태지와 아이들이 평단(?)의 뜨악한 반응 속에 등장해 가요판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게 92년.
그리고 X세대론이 등장했던 게 94년 즈음.
비슷한 시기에 소장 학자들은 소비공간에 주목했고, 때마침 만지작거리고 있던 프랑스적인 이론틀은 신촌과 압구정동이라는 소비문화의 살덩이를 지탱하는,
욕망의 생산구조라는 뼈대를 도려내기에 유용해 보였던 시절...

세월이 흘러 강산이 두 번째 변화를 완성해가고 있고
이제는 어디나 다 그 시절 압구정동 같으며,
누구나 럭셔리 아이템 하나 정도는 입거나 신거나 최소한 둘러 매기라도 하는
'대중의 시대'(?)라 그런지... 어느 한 동네가 예전의 압구정동 만큼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주목 받는 대상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은 요즘.

그래도 질펀한 파티 다음날의 채 지워지지 않은 화장 자국처럼,
좋았던 시절의 흔적이 듬성듬성 엿보이는 압구정동 로데오(!) 한복판에서...
에씨컬 컨셉샵이라는 흥미로운 실험을 펼쳐보고 있다,
요즘의 나는....

그리고 나의 팀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름하여 오르그닷샵 org.shop

한번 쯤 들러 보고 싶은 이들은....


http://www.orgdotsho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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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8 23:20
    오.. 전 요즘 dooing.net 이라고 티셔츠를 통해 인디 디자이너들이 소비자와 만나게 하는 일을 하는데, 오르그닷샵도 참 흥미롭네요!
    • 2009/04/19 18:15
      댓글 주소 수정/삭제
      우리랑 같이 할 게 많을 것 같아요. 놀러 한번 오시죠.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2. 2009/05/24 04:31
    나도 꼭 가서 보고싶은데 당췌 한국에 한 번 들어갈 시간이 나질 않는구나.
    살짝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이곳도 비슷한 가게들이 많고 소비층도 꽤 두터운 편이야.
    오르그샵도 그렇게 잘 커나갈 수 있기를.

오사키 요시오의 단편 <9월의 4분의 1>은 실존적인 사랑을 다루는 작품이다.

저자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언급하며 자신이 겪은 실존적인 사랑의 기억을 풀어낸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예컨대 지우개는 애초부터 뭔가 지우기 위한 물건이라는 목적을 갖고 만들어지며, 그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과 특징을 가지게끔 설계되어진다. 이런 사물을 우리는 존재라 칭한다.
반면 목적도 목표도 없이, 따라서 치밀한 설계 없이 세상에 던져지는 인간 존재는 그야말로 실존적이다. 조물주가 부여한 소명과 그의 설계를 신봉하는 종교인들의 견해는 이와 궤를 달리하겠지만, 어쨌건 사르트르에게 실존은 텅빈 자유와 주체성을 핵심으로 한다. 아무 목적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인간 실존에 대한 통찰은 하이데거의 피투(被投) 개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어쨌거나 사르트르의 실존을 바탕으로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사랑을 '실존주의적인 사랑'으로 규정한다. 어떻게 되어야 겠다는 목적도 목표도 없이, 그 사람이 누구여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던져진 사랑, 빠져든 사랑. 규범과 관습이 제시하는 설계도와 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그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사랑.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기투(企投)하는 사랑.

영화 <연애의 목적>을 연출했던 한재각 감독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연애에 목적이란 없다. 즐거운 시간이 쌓여가는 것, 그게 바로 연애다."

물론 처음에는 실존적이라 해도 그 사랑이 끝까지 실존적이기는 힘들 것이다. 가장 쉽게는 결혼이라는 목적에서부터 집착의 충족에 이르기까지, 실존적인 방식의 텅빈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조바심을 끝끝내 버리기 힘들 것이므로...

버트란드 러셀은 행복에 이르는 사랑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은 사랑의 일종이다. 인간에 대해서 따뜻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소유하기를 원하며, 언제나 명확한 반응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랑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사랑은 불행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행복을 가져오는 사랑은 다른 사람을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개인들의 특성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랑이며, 만나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아내려고 하는 대신, 그들의 관심과 기쁨의 폭을 넓혀주려고 하는 사랑이다. 이런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 될 것이며, 그 대가로 친절을 되돌려 받을 것이다.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종종 우리는 조바심과 소유욕 때문에 행복의 원천이 될 사랑을 불행의 씨앗으로 퇴락시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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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밀그램(S. Milgram)은 감각의 과부하가 도시 스트레스의 근원적 원인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 밀그램의 자극 과부하 이론의 타당성이 확인됨으로써, 그의 이론은 1970년대 도시 거주자들뿐만 아니라 1997년의 데이터 스모그 희생자들에게도 적용 가능하게 되었다. 도시 거주자들이 일상적 삶 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엄청난 자극의 포화에 직면하게 됨에 따라, 이 이론은 수십 년 동안 발전해 온 정보화 시대의 특징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 데이비드 솅크,『데이터 스모그』】

스탠리 밀그램은 참 재미 있는 연구를 많이한 학자였나보다. 많이 알려져 있는 여섯단계이론, 캐빈베이컨 게임 같은 것도 바로 이 양반에게서 나온 이론이다.

어쨌거나 갑자기 이 구절이 생각난 까닭은 오늘 읽은 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소설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경험을 갖게하는 이 독특한 소설은 상업주의에 물든 현대인의 미의식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인 사유의 발판 또한 마련해 놓았다는 점 역시 이 소설이 갖는 미덕이다. 

두뇌기능 및 구조 연구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무르익은 미래의 어느 시점, 가상의 한 대학에서 벌어진 논쟁이 내용의 골격을 이룬다. 그 중심에는 '칼리그노시아'라는 생소한 (의료)조치가 자리한다.

칼리그노시아는 실미증(失美症)을 의미하는 조어로 여기서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지배적인 판단의 요소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뇌의 특정 기능을 인위적으로 마비시키는 조치를 가리킨다. 이 조치를 자기 대학 학생 전체에게 의무화 해야 한다는 쪽은 '철저한 평등을 요구하는 학생회의'고 전미 칼리그노시아 협회 등이 이를 옹호한다.

이들이 칼리의 의무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루키즘'에 대한 문제제기, 또 초자극적/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무기로 사람들의 신경계를 혼란시키는 상업주의에 대한 태클인 것이다.

칼리 의무화에 반대하는 진영은 다소 세력분포가 복잡한데...
일단 가장 저열하게는 화장품업계 등이 만든 사이비인권단체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은 당근 칼리 시술을 의무화하려는 조치에 극렬히 반대하고 반대의견의 선동을 위해 돈을 주고 학생들을 고용하기도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서너명의 교수들은 전공을 망라하고 모두 칼리 시술에 반대입장을 피력한다. 반대의사의 강도나 신중성의 정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아무튼 이들이 주된 반대 논거로 제시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다. 지나친 자극이 문제인 것은 확실하나 인위적인 조치를 통해 자극으로 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 결국은 교육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겠냐는 지극히 학자적인 신중함을 엿볼 수 있다.

어쨌거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현실감 넘치게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테드 창의 구성적 솜씨가 돋보이고 그 기반이 되는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지식 또한 일품이다. 

창작노트에서 테드 창은 자신 역시 찬반 사이에서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면서도 칼리 시술 같은 게 개발된다면 한 번 시도해보고 싶다는 식으로 문제의식의 일단을 드러낸다.

나로선 테드 창보다 좀 더 적극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래 전부터 미디어로 인한 각종 자극이 우리네 삶의 엔트로피를 끊임없이 높여 가고 있다는 사실이 분노스럽기까지 했으니까.
글쎄... 어찌보면 정말로 무서운 발상일수도 있고... 전체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위적인 통제까지도 필요한 긴급한 상태로 현대사회가 매일매일 빠져들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진짜 맘 같아서는 미친 방송들과 광고들을 통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덧] 티스토리 왜 이러냐 이거... 올만에 글 올리려 했는데 며칠 전부터 글이 안 올라간다.
      유독 내 놋북에서만!!! 저장이 안됐다는 경고창만 뜬다 ㅠ.ㅠ 이를 우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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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형주
    2007/03/13 21:17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세상구경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2. 류크
    2007/06/20 21:17
    잘보고감

도정일의 말에 따르자면 동물연구하는 인간(최재천)과 인간연구하는 동물(자신)의 만남이란다. 두 사람의 글을 예전부터 흥미롭고 유익하게 보아 온 지라 척하니 한 눈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지난 금요일 서점에 간 김에 한 시간여 동안 일단 대강 훑었다. 단박에 살까도 생각해 봤지만 25천원이라는 만만찮은 책값을 한 푼의 에누리 없이 내야 한다는 게 못내 억울했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적립 포인트 등을 동원해 사는 것으로 하고 대강 훑어 보기만 한 것이었다 ㅠ.ㅠ

처음엔 화기애애하게 기초학문의 가치를 알아 보지 못하는 세태를 한 목소리로 성토하던 두 양반이 이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운다. 독자로선 반가운 일. 점잖만 빼며 공허한 엇갈림이나 만들어 내는 것 보다야 이처럼 화끈한 박치기가 훨씬 재미있고 유익하지 아니한가. 두 사람이 맞닥뜨린 지점이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에 대한 부분이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또는 직접 읽어보기를)

프로이트에 대한 최재천 교수의 싸늘한 평가, 이에 대한 도정일 나름의 변론 또한 눈길을 끄는 부분이었다. 최 교수는 그의 스승 윌슨과 마찬가지로 프로이트를 통속심리학 정도로 아니 그 이상으로 심하게 평가절하한다.

이 책은 출판사가 몇 년에 걸쳐 기획한, 이른바 출판의 블록버스터 격인데 그에 상응하게 사진 또한 제대로다. 이미지 프레스의 리더 이상엽씨가 찍었다고 한다. 흑백사진에 담긴 도정일의 모습은 지금이 21세기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 참으로 독특하고 개성적인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책 값이 비싸긴 하지만 내일쯤 주문해서 12월 내내 조금씩 읽어 내려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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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대학에 입학 하기도 전, 그러니까 95년 초부터 신촌에 드나들던 나는 오늘의 책인지 알서림에선지 [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 비평)를 샀다. 그 때 같이 산 책들이 꽤 되는데 지금은 이미 기억에 없다. 어쨌거나 나름대로 대학 입학 전 필독서 중 하나로 꼽았던 전환시대의 논리는 당시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책 보다는 책방의 분위기를 좋아했고, 치기어린 술자리를 대학생활의 징표로 여겼으니 그럴만도 하다. 또 하나 당시 내게는 전환시대의 논리와 현실의 문제(모순) 사이에 매개고리가 없었다. 스스로 계기를 제공하기에는 전환시대의 논리는 너무 디테일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기도 했고.

오히려 그 다음에 읽었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가 당시 스무살의 내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암튼 그렇게 인연을 맺었던 리영희 선생을 며칠 전 다시 책상으로 모셨다. 그러고보니 10년만이다. 이번엔 '리영희의 컨텐츠'가 아니라 '컨텐츠로서의 리영희'와의 만남이다.

문학평론가 임헌영과의 대담형식으로 쓰여진 [대화](한길사, 2005)는 선생의 80평생을 고스란히 담은 700쪽짜리 대기록이다. 대담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임헌영의 솜씨와 내공도 만만치가 않다. 서로 친한 사이임에도 리영희 선생은 때론 임헌영을 거침없이 통박한다. 그래서 읽는 이는 즐겁다.

리영희 저작집 11

선생의 자기자랑도 읽는 이를 즐겁게 하는 요소다. 내용없는 겸양, 노회한 처세 대신에 선생은 자신이 한국 현대사에서 담당했던 역할과 의미를 당당하게 소개한다. 그 중 몇 대목을 보도록 하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3인 1조가 돼서 취재를 했는데 혼자서 취재한 내가 엄청난 특종기사로 완전히 승리했지. (...) 언제나 그렇듯, 한국 신문의 권력 아부성 보도지. 그래서 두 신문은 박정희 외교의 '대성과'라는 식으로 보도했어. (...) 조속한 민정이양을 바라는 국민들은 실망하고 앞이 캄캄해진 그런 상태였어. 그런데 사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바로 그것이 나의 특종기사였지."

"아닌 게 아니라 제기동 그 집은 박정희 정권 아래서 억압받고 탄압당하고, 도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찾아와 며칠이라도 먹고 자고 하는 곳이었어. (...) 그때 그 많은 후배 지식인들이 제기동 나의 집에 모인 까닭은 여러 가지이지만, 무엇보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국내외 시국정세를 앞서 내다보고, 그것을 설명해서 의미를 밝혀주고 내일의 전망을 예측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지.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캄캄한 세상에 내가 한 줄기 빛이 되어,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는 상태였지요."

자뻑도 이런 자뻑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선생의 삶과 역할을 생각하면 선생의 말에서 거부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냥 웃음이 지어질 뿐이다. 그래서 난 시종 즐겁게 이 두꺼운 책을 읽었고.

선생이 자기가 생각해도 잘 쓴 것 같다는 <권력의 역사와 민중의 역사>를 다시 찾아 읽었다. 장개석의 몰락과 중국공산당의 대장정의 의미를 미국 공식자료를 기초로 써 내려간 시원시원한 논문이다. 선생의 글이 암흑과도 같았던 70년대 얼마나 큰 역할을 했을 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은 또 <남북한 전쟁수행능력 비교연구> 등 반전평화 관점에서 저술한 뛰어난 논문들을 남겨 국민의 일대 의식전환을 가져오기도 했다. 나도 얼핏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시절 [껍데기를 벗고서],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등에서 선생의 논문들을 인용한 내용들을 보며 놀랐던 기억이.

선생 스스로 노신을 스승, 롤모델로 생각하기 때문인지 노신이 중국인의 근성을 질타했던 것처럼 선생도 곳곳에서 한국민의 국민성을 비판한다. 국민성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냐는 지적이다. 반대로 대체로 유럽문명과 유럽인에 대해선 관용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노신이 중국인민의 게으름과 나태함 등을 혹독하게 비판한 것은 당시의 정세적 효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신이 아큐정전에서 지적했던 정신승리법은 당시 정황에서 못난 특성일 지언정 그 자체로 못나다고 할 수는 없는 속성이다. 정신승리법이라는 독특한 사고방식 때문에 한족은 계속된 이민족의 집권 속에서도 문화적 우위를 지킬 수 있었고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임어당의 지적처럼 중국인의 그 같은 낙천적이 사고방식이 산업사회에서는 묘약이 될 수도 있다.

리영희 선생이 노신에게 영향을 받아 몽매한 한국인을 깨우친 것은 정말 값진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국민성 자체에 대해 변함없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좀 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주말엔 버트란트 러셀 자서전을 읽어야 겠다.

[덧] 얼마 전 KBS한국지성사에서도 비중있게 부각됐던 4.19 당시 교수데모에 대해 리영희 선생은 한마디로 비겁한 행동이었다고 매도한다. 이미 미국이 이승만 정권을 버리기로 작심한 이후 그 동태를 읽고 교수들이 나선 것이라는 얘기다. 정황상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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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 관련 책들이 서점가를 주름잡고 있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신이 지친 직장인들을 겨냥한 이 책들은 때론 '**형 인간'이 되라고 윽박지르고 한편으론 따뜻한 립서비스로 상처를 위무해주기도 한다. 냉정하게 보면 참 얄팍하기 그지 없는데도 사람들이 그 수에 잘도 넘어가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병리 사회인 게 확실한 모양이다.

병세가 위중할수록 미혹되기도 쉬운 법. 항암치료대신 사이비종교와유사의학을 찾아나선 말기 암환자처럼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책들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가능케 해주는 정통한 처방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1937년 뉴욕에서 제조된 '생활의 발견'이라는 묘약도 그처럼 오늘날 각종 처방전에서 외면당하는 소외약품 중 하나다.

저자 임어당은 원래 이 책에 '서정철학'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다고 한다. 일반 철학서 처럼 논리적 수사학을 쓰지 않고 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의 문제를 다루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디립따 느끼하기만한 철학적 관념들의 섞어찌개 대신 담백하고 구수한 복지리라도 끓여낼 요량이었던 모양이다.

헌데 이 또한 제목만의 것이 될까 싶어서, 즉 무슨무슨 철학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것 같아서 '생활의 발견'이라고 고친 것이다. 대단한 겸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저자의 이런 겸허함은 결코 시늉만이 아니었다. 경험많고 지혜로 충만한 (어르신이 아닌)친구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하고 재미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 경우 대개 필이 꽂이는 책들을 읽고나면 일단 저자에게 압도당하고, 무언가 대단히 오랜 시간 동안 힘든 노동을 한 것 마냥 뿌듯함과 함께 긴장감, 피로감이 몰려오곤 했는데 이 책은 달랐다. 마치 임어당이라는 좋은 친구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와 함께 긴 시간 구수한 대화를 나눈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우선 삶과 인간의 운명을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의 지혜로운 체념에 깊이 동의할 수 있었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사는 이 땅에서 70년이나 살다 갈 수 있다는 건 뭔가 거창한 걸 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얼마나 복된 일인가.

인간은 왜 필요이상으로 일을 해서 스스로 굴레를 뒤집어 쓰는가.
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사회의 인정을 위해 살아가는가.
왜 죄를 강조해서 구원을 팔아먹으려는 기독교 따위에 매혹되는가.
왜 삶과 문명을 복잡한 것으로 만드는가.
.
.
.

임어당은 이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단순한 삶, 유희적 삶, 교양과 지혜를 갖춘 삶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지배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서구문명을 향한 중국적인 질타인 셈이다. 실제로 동서양에서 골고루 배움의 경험을 쌓은 그는 중국적인 삶의 가치에 많은 무게를 부여한다. 욕구를 기분좋게 충족시킬 줄 알고 유머러스하며 호연지기의 태도로 단순한 삶을 지향했던 모국인들의 태도에서 답을 찾은 것이다.

가정의 가치 또한 중시하는 면모를 보인다. 그는 진화론을 비롯한 생물학적 성과에도 비중을 두고 있는데,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문명적 특성이 가정에 알맞게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독신주의는 문명의 기형아'라고 질타했으며, "맨발의 노인이 짐을 지고 길 가는 모습을 본다면 그 정치는 이미 끝장난 것"이라는 맹자의 빌어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봉건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루쉰과 함께 반봉건의 선봉에 섰던 사실을 기억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페미니스트들이 보면 분개할만한 표현들이 군데군데 등장하는 게 사실이다. 담배와 흡연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 시각으로 봐선 꼴통스러운 구석이 없잖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식이라는 것 또한 시대의 산물이라고 본다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아쉬운 부분은 근대 정치 체제에 대한 그의 비판이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만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국가적인 면모를 보이는 그에게 물론 당시 공산주의와 전체주의 비판이 큰 관심사였을 것이고 자본주의적 자유주의는 그때까지만해도 (상대적으로)국가주의적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을 터이니 언뜻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후에도 그가 그런 태도를 견지했다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가 자주 소개하는 중국 고전을 맛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그 중에서 이밀암이 지었다는 중용가가 뇌리에 남는다.

(...)
하늘과 땅 사이 그 넓은 세상
도시와 시골의 가운데 살며
시내와 언덕 사이에 농장을 갖고
반쯤 학자에, 반쯤 지주
일도 절반, 놀이도 절반
집은 너무 호화롭지도, 초라하지도 않고
반쯤 장식하고 반쯤은 그대로
(...)
하인도 반쯤 얼간이
아내의 머리도 알맞을 정도
이러니 나는 반은 부처, 반은 노자.
(...)

여러모로 내가 지향하는 삶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 책이다.
누구든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읽어 볼 일이다. 만보객이 삶에 지친 그대를 위해 추천하는 올해의 필독서다. 모르긴 몰라도 후회는 들지 않을 것이다.

"독서란 결혼처럼 인연이나 운명의 끈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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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yo
    2005/10/07 18:49
    생활의 발견은 나도 읽은적이 있지만,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이 차면서 몇번 더 읽어볼수록 임어당의 반공주의자적 면모가 너무 드러나는 글이라 생각해. 아니 너무 드러난다기 보다 뭐랄까 당의정에 으로 포장한 글이라 더 무섭달까? 비국가주의적 면모가 보인다면 , 그것은 지식인출신 쁘띠부르주아로서 구질구질한 거에 대한 태생적 거부감이 그렇게 포장된게 아닌가 싶어. 린위탕은 30년대에 이미 프린스턴 교수도 했고 이차대전 이후 대만이 유엔 상임이사국일때 유엔대표도 지냈으니 뭐 한 인생 잘 지낸 사람이지( 내가 너무 시니컬한가 싶기도 하다만.)
  2. evo
    2005/10/07 21:54
    글쎄... 반공주의적 면모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두드러진다고까지 하기엔 무리가 있을 듯 해. 전체주의와 엮어 (현존)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은 여기저기서 드러내지만 유물론에 대해선 본질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거든. 물론 그것이 역사유물론은 분명 아니지. 맑스에 대해서도 아쉬움과 비판을 토로 하니까.
    하지만 비국가적인 철학은 단순히 포장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입장 수준에서 개진이 되고 있고 자본주의적 문명과 일상에 대한 비판도 예리하다고 볼 수 있지.

    반공주의라는 말의 역사성을 생각할 때 임어당에게 그 딱지를 붙여주기는 좀 미안한 감이 있음. 그가 비록 국민당에 일조했고 대만(자유중국)의 외교부 고문까지 지냈다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 당시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태도는 조지 오웰이나 러셀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어당이 그들처럼 사회주의적 전망까지 지니지는 않았겠지.

    암튼 (세련된) 반공주의자라 몰아세우기엔 문명비판적인 그 주장의 진정성이 너무 돋보이네.

지난번 포스팅 이후 다 읽은 책은 [수학의 몽상](이진경 지음, 푸른숲) 정도다. 나머지는 다 찔끔질끔 읽다 말다 하고 있다. 수학의 몽상은 후배가 추천해 보게 됐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처럼 수학과 원수진 사람들은 꼭 읽어 볼 것. 우리를 괴롭혔던 수학과는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지니.

저자는 (근대)수학의 역사를 유쾌하고 시원시원하게 짚어나간다. 근대과학혁명에서 수학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근대의 사유체계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 지 조망한다. 결국 수학은 절대진리가 아니라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 따라서 수학은 엄격한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집합론의 창시자 칸토어의 말처럼 "수학의 본질은 자유다!"

이진경씨가 수학의 역사까지 건드리게 된 이유는 그의 근대연구의 연장선상에서였을 것이다. 그는 수학사에서 괴델의 정리를 발견했고, 이를 맑스의 가치체계 재해석에 연계시켜 변혁과 이행의 경로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활용했다.

수학의 몽상 이외의 책들은 그냥 계속 읽어가는 중이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억지로 머리에 쑤셔 넣을 필요도 없는 독서. 그래서 맘에 내키는대로, 눈에 띠는 대로 이 책 저 책 들쳐 보다가 막히면 밀쳐두고 그러는 중이다.

화이트헤드의 [과학과 근대세계], 만연체 문장이 짜증나 진도가 팍팍 나가질 않는다. 수학의 몽상을 읽었으니 좀더 쉽게 읽혀지려나?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절반 넘게까지는 재미 있게 읽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 삶의 양식과 관련해 느끼는 바가 컸다. 웰빙이니 다운쉬프트니 이미지만 차용할 게 아니라 이 책을 통해 삶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절반 넘어서면서 부터는 동어반복이 느껴진다.

리아 코헨의 [탁자 위의 세계], 독특한 책이다. 이른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른 동네 모퉁이 카페에서 매일 마주치게 되는 유리컵, 신문, 커피 - 이것들의 재료가 되는 유리, 종이, 커피콩의 원산지를 찾아 그 심오한 마주침에 대해 다루는 책이다. 커피콩의 원산지인 멕시코 산악마을의 이야기가 꽤 흥미롭다. 저자는 미모의 젊은 여성이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탓인지 추상적인 묘사와 상투적인 단어들이 쉬 읽는 이를 피로하게 만든다. 이 책 역시 개성있고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다룬 것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움베르토 에코의 유머러스하고 통렬한 [세상의 바보들에게...]를 읽는 게 낫겠다.

톨스토이 단편선(박형규 옮김, 인디북), 내 감성이 메마른 탓인지 너무 낯설다. 착한 사람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신. 마음이 좀더 황량해 질 때 다시 읽어야 겠다. 아니면 차라리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읽어 볼까나? 그러고 보니 잭 런던의 [강철군화]도 한번쯤 알현하고 싶은데...

앤디 메리필드의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맑스-엥겔스-발터벤야민-기 드보르-앙리 르페브르-마뉴엘 까스텔-데이비드 하비 등 맑스주의적 전통에서 도시를 연구해 온 이들을 한 데 엮은 개괄서. 왠지 모르겠는데 대학시절부터 도시연구에는 이상하게 관심이 가더라. 우리 대학 때는 강내희의 롯데월드 연구, 조한혜정 그룹의 신촌 현대백화점 연구 뭐 이런 게 많았는데 요즘엔 왜 없을까? 몇 년 전 사회진보연대 기관지에 장귀연씨가 썼던 코엑스몰 기행문도 꽤 재미 있었던 기억이 나는군.

다음 주에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빌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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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9/05 09:16
    잡식을 하고 있소... 흐흐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강추!
  2. evo
    2005/09/05 10:47
    안 그래도 지금 읽고 있는 중... 꽤 몽환적인걸?

90년대 초 소비에트가 해체되고 그와 함께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할 당시 이진경은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수감중이었다. 박노해도 이야기했지만 그 당시 사회주의자들에게 이는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던가. 그러나 이들은 곧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 역사적 사회주의 기획의 정당성을 일소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자본주의의 승리와 역사의 종언으로 귀결되는 건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이진경은 그의 말마따나 새로운 지도 그리기에 몰두해 왔다. 그것은 사회주의속에서 녹아들어 있었던 국가주의의 망령을 걸러내는 것이었고, 자본주의와 사이 좋게 공유하고 있었던 근대성이라는 지형 자체를 흔드는 것이었다. 거칠게 말해 사회주의적 기획이 근대성이라는 토대 하에서 진행되는 한 실패는 필연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인식이었고 그래서 그는 '주체생산의 역사이론 정립'에 나선다.

생산양식과 국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바뀐다고 해서 저절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소비에트 사회주의에서 목도한 까닭이었다. 근대성이 대중(주체)의 습속에 뿌리깊게 작용하는 한 사회주의적 생산양식도, 국가도 애초의 기획과 달리 변질될 수 밖에 없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변혁은 생산양식과 국가라는 거대한 층위에서 보다 주체의 습속이라는 미세한 영역으로 내려 오게 된다. 97년 출간한 '맑스주의와 근대성'에서 그는 자신의 새로운 (쿄뮨주의적)기획의 전모를 밝혔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그의 작업은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하다.

쉽게 말해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의 사유와 행위를 제한하는 삶의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는 것이었다. 국가와 경제가 아니라 삶의 공간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변혁의 꿈.

각설하고... 뒤늦게 읽게 된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푸른숲, 2000)'은 앞서 언급한 '맑스주의와 근대성'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책이다. 내가 이번에 읽은 건 2000년에 다시 나온 증보판이다. 사실 이진경은 '맑스주의와 근대성'에서 근대적 노동 체제를 서술하면서 근대적 노동의 성분들로 '시간-기계'와 '공간-기계' 등을 이미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은 이 부분을 좀더 심화해서 엮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more..



저자가 명쾌하고 정리는 했지만 실제로 현실이 바뀌는 건 그와 별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국가와 생산양식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지난한 문제일 수 있다. 어디서부터 누구부터 시작할 것인가? 과연 짧은 시간(한 두 세대)내에 그게 의미있는 수준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인가. 경제적 층위의 문제는 그렇다치고 미디어와 교육 바꾸어야 할 게 어디 한두가지인가. 갈 길은 멀다. 그리고 지금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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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과 열패의 신화] 박노자
경쟁의 원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한국사회의 전투성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박노자는 구한말부터 지배계급에 의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사회진화론에서 그 뿌리을 찾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에서 약육강식의 논리가 자연스레 뿌리를 내렸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파쇼정권과 그 부역지식인들에 의해 전면화됐다는 것이다. 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학문적으로 성실하며 무엇보다 한국어까지 유려하게 구사하는 파란 눈의 한국인, 아니 세계인을 어쩌면 좋겠는가. 집요하지 못하고 게으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가끔 삐딱선을 타는 이 어쩔 수 없는 한국사내는 그저 심술만 날 뿐이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는 최근 '지배자의 얼굴만 바뀐 식민주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글에서 이 책의 내용이 주목할만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도 재미와 의미 양측면에 있어 상당한 무게감을 지닌 노작인 듯 하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종규
게임이론을 통해 인간의 행위의 진화를 조망하는 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죄수의 딜레마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그리하여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하고 시장은 실패하게 되는 것인가?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이타적 행위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동물들에게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타적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개체가 아닌 유전자의 입장에서 이타적 행위가 사실은 유전자의 계산적 행위라는 혈연선택이론 등 사회생물학적 관점 등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약육강식의 진화론이 아닌 상부상조의 진화론, 즉 남을 도와야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호혜적 선택과도 만나게 된다.

과하게 설명적이어서 지루한 면이 없지 않지만 뒤로 갈수록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이 책이 아직도 읽고 있는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지식의 대통합에서 강조하는 통합적 학문의 맛보기가 될 수 있을까?

[미디어 바이러스] 더글러스 러시코프
오래 전부터 읽어 봐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책장을 펼쳐 들었다. 서문을 읽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흥미롭다. 미디어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 요즘의 내게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인터넷은 휴머니즘이다] 데이비드 와인버거
목차만 봤다. 썩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애써 희망과 긍정성을 말하려는 억지가 느껴진다. 그래도 읽어 보련다.

[일상문화 읽기 - 자기성찰의 사회학 3] 일상문화연구회
예전에 이 시리즈의 1권을 우연찮게 손에 넣게돼 슬쩍 읽었는데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해 온 모양이다. 재작년 회사에서 초청강연을 들은 적 있는 윤지영 박사의 글도 눈에 띤다. 이번에도 부담없이 슬쩍 읽어 봐야겠다.

[20세기 문화 이미지] 이성욱
이성욱의 유고집 4권 가운데 한 권. 뭐라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그냥 문득 읽고 싶어졌다.

[과학과 근대세계]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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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글쓰기의 힘(출판무크지 북페뎀 7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刊

'지식의 대통합 통섭(Consilience)': 에드워드 윌슨 著, 최재천 譯

'보라빛 소가 온다2': 세스 고딘 著, 안진환 譯

끝에서 부터 얘기해 보자. 보라빛 소가 온다는 1편에서 끝냈어야 했다. 1편의 키워드가 리마커블이었다면, 2편에선 이노베이션이 강조된다. 벌써부터 뻔하지 않나? 문체에만 Cool~함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 내용전반은 더이상 리마커블하지가 않다.

통섭은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읽어낸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과학에 과문한 나로선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서 서울대 최재천 교수의 스승인 저자는 학문 통합(아니 통섭)의 전망을 밝히기 위해 참으로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아는 것도 많고 읽은 책도 많다는 게 글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4장을 읽고 있으니 아직 뭐라 판단할 단계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기술결정론적 시각, 자연과학의 승리의식이 도도하게 흐르는 듯 하다. 저자는 이 같은 비판을 사전에 봉쇄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불가지론을 정면으로 돌파할 생각인가 보다. 앞으로 어떤 논지를 전개해 나갈 지 자못 흥미롭다.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가 발간하는 출판무크지 북페뎀 제7호는 글쓰기의 힘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다. 부제가 좀 알량하다. 디지털 시대의 생존전략... 이 부제야말로 북페뎀의 생존전략이 아닐지? ㅎㅎㅎ

출판'마케팅'연구소답게(!) 요즘 세태에 팔리고 먹어주는 걸 염두에 두고 기획한 냄새가 확 풍긴다. 자기소개서 쓰기, PR문, 기획서 작성하기 등은 참 말하긴 뭐한데 애처로운 시도로 보인다. 저 꼭지들 때문에 샐러리맨들이나 취업준비생들이 한가하게 이 책을 사지는 않을 듯 한데... 괜히 선수들 사이에서 스타일만 구기는 건 아닌지.

수록된 20여편의 글 가운데 정운현(한때 오마이뉴스 편집장을 지냈고 지금은 친일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의 '자료를 찾아 글쓰기에 활용하는 법'이 제법 유익했다.
얼마전까지 한겨레 21에 칼럼(스타일앤씨티)을 썼던 김경의 글 '나의 스타일, 나의 칼럼'은 내용이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스타일 없는 내 글쓰기에 대해 한숨 짓게 만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스타일 신경쓰다 아예 못 쓰는 것보단 낫지. 이런 위안으로 패쓰~

어쨌든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읽기는 힘들어도 지적인 호기심과 도전의식은 만빵으로 심어주고 있다. 오랜만에 임자 만난 듯 하다.

그나저나 주말부터 5일 일정으로 제주에 가는데 가서 뭔 책을 읽을까나... 제주까지 가서 학문의 미래와 씨름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목록이나 뒤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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